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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계

다양한 모색에서 자연으로 회귀한 美의 순례자

Ⅰ. 흔히들 작품을 평가할 적에 그의 인간성을 들추는 수가 있다. 이것은 작품 창조의 계기가 되는 주체적인 작가, 즉 인간이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의 인간형성은 그의 환경과 체질에 따라 이루어진다. 첫째, 환경이란 지역적인 차이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독특한 분위기로서 같은 환경 안의 사람들을 같은 인간형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가령 서양과 동양의 차이라든가, 같은 동양 속에서도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고유의 무화를 창조하고 향유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분류는 그 사람이 어느 환경 속에서 자랐고 발전되어 왔느냐는 것이 문제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 형성의 제일 조건인 환경이다.
둘째 번에 문제되는 것이 각 예술가들의 체질이다. 이 체질이란 말은 인간형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리위에 후천적으로 몸에 지닌 요소를 합쳐서 이루어진다. 흔히 통용되고 있는 인간형의 분류법은 인간 세상을 비극이 아니면 희극이라고 보고 비극형 즉 햄릿형과 희극형 즉 돈키호테형으로 나눈다. 또 한 가지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양성적인 아폴로형과 음성적인 디오니소스형으로 나누는데 이와 같은 분류가 바로 인간 체질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다 다르듯이 사람의 성질이나 체질도 다 다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전개시킨 근본 의도는 다름 아니라 화가 이종무의 작품 세계를 알아보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종무의 경우 천성적인 꼬장꼬장한 고지식함과 부조리를 극도로 미워하는 어느 정의감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 고집 같은 것이 그의 인간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성격은 곧바로 작품 세계에 연결되어 작품 양식을 이룬다.

Ⅱ. 이종무 작품의 양식적 고찰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형태와 색채로 나누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그것에 앞서서 정리해야 할 것은 그의 작품 전부가 풍기고 있는 전체적인 인상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양식은 한마디로 표현하여 구상(具象)이다. 이 구상이란 말은 사실(寫實)이란 말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면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뉘앙스가 크게 다르다.
사실이라는 것은 사람의 눈에 비치는 대상의 자연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따라서 사진기로 찍은 사물의 상태와 같은 객관적인 진실이 그곳에서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구상이라는 것은 사실과 마찬가지로 자연 형태를 긍정하되 액면 그대로 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다소의 화가의 주관을 가미함으로서 대상의 자연을 부분적으로 자기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 구상 작품은 사진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고 붓의 움직임과 재료의 효과가 느껴지는 그러한 진실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구상 회화는 사실 회화와 추상 회화의 중간 지대에 서식하며 화가의 주관을 극도로 객관화시키고 있다. 물론 이때에 크게 작용하는 것은 화가의 자연에 대한 해석과 태도임은 물론이다.
화가 이종무의 작품 세계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형태 감각은 수평구도이다. 사람의 시선은 좌우로 운동하기 쉽기 때문에 수평감각은 편안하고 안정되고 있다. 화가 이종무가 수평구도를 즐겨서 쓴다는 사실은 조형작업이라는 인공을 떠나서 그의 선천적인 인간형까지도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즉 거만하지 않고 가장 평민적인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지라 웅대한 것과 장엄한 기상보다는 조촐한 것과 소박한 것을 즐기는 마음의 취향이 긴장을 고조하고 화면의 격만을 따지는 수직구도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좌우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시선의 운동이 자유스럽기 짝이 없다. 아무런 눈의 저항도 받지 않고 쾌적하게 전개되는 수평 운동이야말로 그의 작품 특히 풍경화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직구도의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직구도일 경우에도 직각적인 것이 아니고 대각적인 흐름으로 화면을 처리하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다음 그의 색채에 관해서는 그는 황갈색을 좋아한다. 황갈색이란 말할 것도 없이 난색(暖色)계통으로서 그것은 인간성의 부드러움이나 감성을 표시하는데 적합하다고 본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취향에서 오는 황갈색에의 취향은 곧 한국 민족이 갖고 있는 황토의식에 집결된다. 황토 속에서 낳고 자라고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유달리도 황토에의 애착이 짙다. 따라서 화가 이종무가 황갈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곧 선천적으로 한국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황갈색은 계절로 비유한다면 가을에서부터 겨울에 걸치는 색깔이고 인생으로 비교한다면 황혼기로 접어드는 무르익은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가 이종무의 인생이 그의 황혼기로 접어들고 인생관이 달관(達觀)과 체관(諦觀)을 알게 된 지금의 그의 심성의 색깔이란 말할 것도 없이 황갈색일 것이다.

Ⅲ. 화가 이종무의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사실(寫實)에서 시작하여 구상(具象)에 이르고 그 구상에서 부분적인 추상에 이르렀다가 또다시 구상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미의 정체를 찾아서 가장 구체적인 사실에서 가장 보편적인 추상의 세계를 왕복한 미(美)의 순례자인 그는 가장 아름다움에 순응하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그인지라 이와 같은 자연 회귀는 가장 본질적인 자기에의 충실인 것이다. 자연에 기조를 둔 그의 작품 세계가 무르익을 대로 익은 그의 인생과 더불어 어떤 최후의 결론을 내리느냐는 것은 바로 초로로 접어든 현재부터의 과제인 것이다. 노경의 세계를 완성의 세계로 보고 동양의 예술 정신으로 볼 때 그의 예술은 이제부터 최후의 장을 쓰기 시작한다.

이경성(미술평론가)
『李種武』, 미술저널社, 2003.에서 발췌함